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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예속의 개 목걸이 2020. 5. 26. 16:26

     “만약 괜찮으시다면 메이드 체험을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다음날.
     눈을 뜨는 것과 거의 동시에 찾아온 안제의,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제안에 니나는 곤란해 하고 있었다.
     어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생각하던 때에 일단은 안제가 무언가 요구를 해 올지도 모른다고 예상은 했었지만, 이 제안은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저기…… 무슨 뜻인가요?”

     침대에서 일어나 머뭇머뭇 질문하자 안제는 눈을 크게 뜨고는 부끄럽다는 듯이 몸을 뺐다.

     “어머, 죄송해요 저도 참…… 마음이 앞서는 바람에”
     “네, 네에……”

     니나가 애매한 대답하자 안제는 마음을 다잡으려는 건지 헛기침을 한다.

     “설명 드리자면, 니나 님은 오늘부터 이곳에서 살게 되시는 거죠?”
     “……그렇게 되네요”

     ‘지금 당장에라도 도망치고 싶지만……’

     숨기고 있는 마음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고 솔직하게 끄덕인다.

     “그리고 개 목걸이의 일도 있으니 쉽사리 밖에 나갈 수 없는 상태…… 그러니까 필연적으로 이 저택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늘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거기까지 말하고 안제는 검지를 세운다.

     “그래서 처음에 한 제안입니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저희와 함께 일을 하시는 게 마음도 편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한 겁니다”
     “……그렇군요”

     ‘이치에 맞는 얘기이기는 한데……’

     대답이 망설여져 니나는 팔짱을 낀다.
     그러자 갑자기 안제가 니나 쪽으로 한 걸음 다가와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입을 열었다.

     “게다가—— 저, 니나 님에게는 메이드복이 절대로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요!”
     “……네?”

     조금 전의 납득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커다란 물음표가 머리 위에 떠오른다.

     “저, 저기…… 뭐가 어울릴…… 거라고요?”
     “메이드복이요! 니나 님에게는 절대로, 틀림없이, 이런 팔랑거리는 옷이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하죠!!”

     더더욱 다가오는 안제의 기세에 눌린 니나는 뒷걸음질을 친다.

     ‘이, 이 느낌, 어쩐지 요전의 리네아 씨 같아……’

     굉장히 귀여운 옷을 입히고는 엄청나게 칭찬하던 그녀의 모습이 뇌리에 떠올라 니나는 마른 웃음을 짓는다.

     ‘뭐, 뭐어, 안제 씨의 취미는 어쨌든…… 메이드 체험인가’

     니나의 경험상, 아니,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이 권유는 틀림없이 ‘함정’이다.
     어슬렁어슬렁 따라가면 어제 욕실에서의 일이 또다시…… 혹은 더욱 지독한 꼴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거절이지만……’

     하지만, 하고 니나는 생각한다.
     이 제안을 거절하고 방에 남는다고 해봤자 부탁으로 방의 출입을 금지당하는 순간 아무런 움직임도 취할 수 없게 된다. 아무런 행동 없이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을까?
     ——어제도 생각해 봤지만, 그런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위험하기는 하지만 밖에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메이드 체험’에 참가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애초에 니나가 제안을 거절한다고 해도 부탁으로 강제적으로 참가 당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부탁을 받기 전에 제안을 받아들이는 쪽이 행동의 제약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마치고 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메이드의 일이라는 건 구체적으로 뭘 하는 건가요?”
     “응~ 그렇네요. 간단하고 유명한 것은 역시 방의 청소나 세탁, 설거지 같은 거죠”
     “평범한 가사 도우미 같기는 하지만…… 이 저택의 청소는 역시 힘든가요?”
     “예, 사람이 아무리 있어도 부족할 정도죠…… 그러니까 니나 님에게는 그쪽을 도와주셨으면 해요”
     “일은 청소인가요”

     ‘……꽤 좋을 것 같은데?’

     세탁이나 설거지는 정해진 곳을 떠날 수 없지만, 청소라면 저택 안을 돌아다닐 수 있을 테고, 필연적으로 미라르마와 만나게 될 가능성도 높을 터다.
     니나는 주먹을 꽉 쥐고, 결의에 가득 찬 얼굴을 든다.

     “……알겠습니다. 할게요. 그 일”
     “와, 정말인가요……! 기뻐요!”

     니나의 말에 안제는 어제 보여줬던 외설적이고 가학적인 미소가 아니라 정말로 기쁜 듯한 미소를 보여준다.

     “후후, 그러면 지금부터는 손님이 아니라 동료로서 니나 님이 아니라 니나 양이라고 불러도 괜찮겠죠?”
     “아, 네. 그것도 상관없는데요……”
     “감사합니다♡ 금방 메이드복을 가져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발에서 음표가 나올 것 같은 경쾌한 발걸음으로 안제가 방에서 튀어나간다.
     그 모습이 역시나 리네아를 떠올리게 해서 니나는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하지만 몇 분 후. 나갈 때와는 정반대의 텐션으로 안제가 방에 돌아왔다.
     엄청난 변화에 니나도 당황해서 왜 그러냐고 묻자 안제는 이 세상의 끝을 보고 온 듯한 표정으로 “하아아아”하고 깊은 한숨을 내쉰다.

     “……니나 양의 키와 가슴에 맞는 옷이, 한 벌도 없었어요”
     “어…… 아, 아~…… 그랬군요”

     자신의 키와 가슴을 보며 니나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 확실히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메이드들의 평균적인 키나 스타일이 안제와 비슷하다고 한다면 니나에게 맞는 메이드목이 이 저택에 있을 리가 없을 것이다.

     “하아…… 귀여운 모습을 볼 기회였는데……”
     “아하하…… 저도 유감이에요”

     노골적으로 유감이라는 표정을 짓는 안제에게는 미안하지만, 니나는 살짝 안심했다.
     자신의 키가 너무 작아서 맞는 옷이 없다는 것에는 살짝 복잡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이 이상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부끄러운 일을 당하는 것은 사절이었기 때문이다.

     “하아, 일단은……”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이것이라도 입어 주세요……” 라며 허리에 두르는 에이프런과 카추샤를 내밀었다.
     옷을 입을 수 없다면 분위기만이라도, 라는 의미겠지.
     건네주면서 안제가 중얼거린 “다음 주에는 꼭……”이라는 말을 듣고, 다음 주에도 만나자는 부탁을 당하기 전에 어떻게든 저택에서 탈출을 하고 말겠다는 다짐을 하는 니나였다.



     “오늘 니나 양에게는 2층의 빈방과 주인님의 침실 청소를 도와주셨으면 해요”

     간단한 아침식사——라고 해도 니나에게는 엄청나게 호화스러운——를 끝내고 계단을 오르며 안제가 오늘의 일정을 설명해 주었다.

     “두 곳 다 평소에도 청소를 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더럽지는 않으니 금방 끝날 거라고 생각해요”
     “미라 씨의 침실은 당연하지만, 어째서 빈방의 청소를?”
     “우후후, 메이드라는 것은 모든 방을 관리하고 청결을 유지시키는 것이 상식. 게다가 지금은 쓰지 않는다고 해도 어제 니나 양이 왔을 때처럼 누군가가 갑자기 찾아 올 수도 있으니까 빈방을 청소하는 거랍니다♡”
     “……그렇군요”

     일에 대한 열정에 자신도 모르게 감탄한다.
     혹시 니나가 메이드로서 일한다고 해도 거실이나 사람이 있는 방 외에는 적당한 청소밖에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대화를 하는 동안 목적지에 도착한 건지 안제가 발을 멈추고는 “여기예요”라며 문을 가리켰다.

     “여긴…… 빈방인가요?”
     “네, 맞아요. 청소는 해두고 있고 쓰는 사람도 없으니까 그렇게 더럽지는 않을 거예요. 빠르게 해치우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먼저 방에 들어가는 안제를 뒤따라 약간 경계를 하며 니나도 방 안에 들어간다.

     ‘아무것도 없지?’

     방에 들어간 순간 메이드들에게 습격당해 험한 꼴을 당하게 되는 건 아닐까 불안했지만, 아무래도 불안은 불안으로 끝난 것 같다.
     별다를 것 없는——이 저택 치고는, 이었지만—— 빈방이었다.
     한 가지 특징을 말하자면 어제 니나가 감금당한 방보다도 창문의 면적이 크다는 것 정도일까?
     다른 차이점은 보이지 않아서 일단 경계를 풀고 안제에게 말을 건다.

     “저기, 바로 시작하면 되나요?”
     “으~응, 그렇네요. 니나 양은 일단 간단한 창문부터 닦아주실래요?”
     “창문……인가요”
     “따로 하고 싶으신 일이 있으신가요?”

     주저하는 듯한 니나를 보고 안제가 고개를 갸우뚱거려서 니나는 서둘러 부정한다.

     “아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창문을 닦을 때 물이 튀어서 옷이 더러워질 것 같아서……”
     “어머, 청소니까 어디를 닦아도 어느 정도는 더러워 질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아아! 그런 뜻이었군요”

     니나가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해 준 것인지 안제는 니나가 입고 있는 옷에 눈길을 준다.
     그렇다. 지금 니나가 입고 있는 옷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미라르마가 빌려준 옷이다. 자신이 더러워지는 건 상관없지만, 이 옷을 더럽히는 건 조금 꺼려진다. 더러워진 물이 튀어 얼룩이라도 만들어 버린다면 큰일이다.

     “……후후, 그렇다면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답니다”

     하지만 안제는 문제없다면서 손뼉을 치고는 입꼬리를 올린다.

     “정말인가요? 아, 더러워져도 상관없는 옷을 빌려주신다던가……”
     “아뇨, 더 간단한 방법이 있죠. ‘니나 양, 이 자리에서 옷을 벗어 주세요♡’”
     “어……”

     갑작스러운 부탁에 머리가 따라가지 못하고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만다.
     하지만, 강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자신의 손발을 보고 니나는 “뭐어!?”라며 소리를 질렀다.

     “어, 어째서!? 오, 옷을, 버, 벗으라는 거예요!! 의, 의미를 모르겠어요!!”
     “모르시겠나요? 간단한 일인데요. 옷을 더럽히고 싶지 않다면 옷을 입지 않으면 되잖아요. 후후, 간단하죠?”
     “그러니까 의미를 모르겠어요——!!”

     니나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안제를 노려보지만, 움직이는 손발은 멈출 생각 없이 담담히 부탁을 실행한다. 그리고 어제는 벗는 데에 그렇게 고생했던 원피스를 자신의 손으로 간단히 벗는다.
     받은 에이프런도 벗어버리고 말아 남은 것은 머리에 쓰고 있는 카추샤뿐이었다.

     “지, 진심으로 이런 모습으로 저런 곳을 청소시킬 생각인가요!?”
     “그런데요? 니나 양이 그러셨잖아요. 옷을 더럽히고 싶지 않다고♡”
     “마, 말하기는 했지만요. 했지만요!!”

     방금 한 말이 이런 사태를 일으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메이드복이 아니라면 어떤 모습이든 그게 그거고요……”

     안제의 중얼거림에서 들린 본심에 니나는 그렇게 고마워했던 자신의 키를 저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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