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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8. 붙잡힘
    소설/예속의 개 목걸이 2020. 5. 25. 16:53

     “씻어야……해……”

     메이드들이 나가고 몇 분 후.
     겨우 망연자실한 상태에서 부활한 니나는 자신의 애액으로 젖은 하반신에 물을 뿌려 씻긴 후, 위태한 발걸음으로 욕조로 이동해 몸을 담근다.

     “하아……”

     기분 좋은 따뜻함이 전신을 이완시켜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왜 이런 일이……”

     그리고는 어깨까지 푹 담그고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여기라면 괜찮을 거라고 완전히 방심했어. ……아니, 그렇지 않아. 나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싶을 뿐이었어’
     ‘그래, 시스터…… 리네아 씨조차 풀지 못한 저주가 그렇게 간단히 막힐 리가 없는데…… 미라 씨도 메이드들에게 건네준 것은 자신이 가진 것보다 한 단계 낮다고 했었는데 어째서 나는……’

     따뜻한 물에 녹는 것처럼 후회가 스며 나온다.
     상냥했던 안제의 모습과 조금 전의 바뀌어버린 안제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자책감이 니나의 등을 납처럼 짓눌렀다.

     ‘적어도 이 이상 피해자가 늘지 않도록 빨리 이 저택을 벗어나야 해……’

     이대로 자신이 이곳에 눌러앉으면 메이드들 전원이 개 목걸이로 이상해질 것이다. 그건 친절하게 대해준 미라르마 씨에게 아무리 사과해도 부족할 정도고, 니나 자신의 몸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든 미라르마와 접촉해서 메이드들을 어딘가에 격리시킨 후—— 니나는 거기까지 생각하다 머리를 좌우로 흔든다.

     ‘아냐…… 그것도 안 돼. 지금도 민폐를 끼치고 있는데 이 이상 미라 씨에게 부담을 줄 순 없어’

     니나의 얘기를 들으면 상냥한 그녀는 틀림없이 책임을 느끼고 지금보다도 더 니나를 돌봐주기 위해 기를 쓸 것이다.
     그 마음 자체는 정말로 기쁘지만, 그렇게 미라르마를 번거롭게 하는 것은 니나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게다가 미라르마 본인도 절대로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다. 아무리 메이드들보다 강력한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번 일로 인해 저주를 완벽하게 막을 수 있다는 확증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살짝 빠져나갈 수밖에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방법을 떠올리지 못해 니나는 “으~응”하고 끙끙 앓는다.
     상대는 적어도 3명 이상이고, 부탁을 듣게 된다면 어떤 상태든 순식간에 열세로 몰릴 게 뻔하다. 살짝 빠져나가기는커녕 애초에 도망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정말로 무슨 기적이 일어나든가 그녀들이 커다란 미스를 하지 않는 한은 어떤 작전을 세워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적어도 마법을 쓸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슬라임에게 흡수당한 마력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 전이 마법을 쓰기에는 부족한 상태였다.

     “으~……”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기보다는, 무슨 생각을 해도 의미가 없다는 지금 상황에 한숨이 나온다.

     ‘부탁에 횟수 제한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의미 없는 푸념을 내뱉으며 니나는 욕조에서 일어났다.



     니나가 욕실에서 나오자 선언한 대로 메이드들이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도망칠 틈도 없이 양손을 구속당해 반쯤 끌려가는 형태로 복도를 걷는다.
     당연히 니나도 저항했지만, 마비가 아직 남아있는데다 몇 번이고 가버린 영향으로 몸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아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어떻게든 틈을 찔러서 도망쳐야 하는데……’

     다행이도 “도망치지 마세요”, “따라오세요” 같은 부탁을 당한 건 아니다. 즉, 이 구속만 어떻게 한다면 아직 도망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녀들은 욕실에 들어가기 전에 말했던 것처럼 인기척이 없는 빈방에 자신을 감금하고 미라르마와의 접촉을 방해하려고 할 것이다.
     애초에 미라르마에게 지금 상황을 전하는 것은 심정적으로 꺼려지기 때문에 그건 문제없지만, 아무도 없는 빈방에 감금된다는 것은 커다란 문제다. 내일 아침이 밝을 때까지 메이드들에게 마음껏 희롱당하는 모습이 쉽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수면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도 못하고, 최악의 컨디션으로 내일을 맞이하는 꼴이 되어 체력 부족으로 저택에서 탈출이 불가능 해진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니나는 어떻게 해서든 빈방에 감금되기 전에 도망칠 필요가 있었다.

     ‘뭐든 좋아. 메이드들의 주의를 돌릴 수만 있다면——’

     소리, 물건, 대화, 수단은 뭐든 상관없다. 어쨌든 메이드들의 주의를 돌릴만한 것을 찾으려고 고개를 돌리자——

     “어머, 니나 양. 꽤 길었군요”
     “어……!?”

     갑자기 눈앞의 문이 열리며 나타난 사람을 보고 니나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미, 미라 씨!?’

     예상치 못한 조우에 원하던 ‘해프닝’에도 불구하고 니나는 굳어버리고 만다.

     ‘설마 이것도 예정대로인가……?’

     의도적인 건지 우연인 건지 메이드들의 표정으로 판단하려고 했지만, 철면피처럼 달라붙어있는 미소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 니나에게 띄우고 있던 가학적인 미소는 이미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어쩐지 축 늘어져 있는데 무슨 일 있었니?”

     양 겨드랑이를 잡혀있는 니나를 보고 미라르마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가온다.
     이대로라면 메이드들이 이상해진 것을 들킬 거라고 생각해 당황했지만——

     “‘얘기하시면 안 돼요♡’”
     “……읏”

     귓가에 속삭여져 니나는 작게 경련한다. 감도가 올라간 귀는 갑작스러운 쾌감에 아주 약해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니나가 느끼고 있는 틈에 안제가 나서서 입을 연다.

     “그것이, 주인님…… 아무래도 니나 님은 욕조에 들어가시자 한 번에 피로가 몰려오신 듯해서——”

     그 내용은 탈의실에서 말했던 ‘니나와 미라르마를 만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니나가 보기에는 거짓말도 그런 거짓말이 없었지만, 미라르마는 안제의 얘기를 듣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니나를 바라본다.

     “정말!? 괘, 괜찮은 거야!? 한 번 더 의사에게 봐달라고 해야……!”
     “아뇨, 니나 님의 몸이 안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의사를 부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빨리 침대에 눕혀 체력을 되찾게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지…… 그렇죠? 니나 님”

     그렇게 말하고는 이쪽을 보며 미소 짓는 안제에게 복잡한 감정을 느꼈지만, 미라르마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도 싫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본 미라르마는 “그래……?”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렇게 서서 얘기하는 건 몸에 좋지 않겠지. ……알겠어. 그치만 조금이라도 상태가 안 좋아 지면 바로 불러줘. 필요한 건 전부 가져다 줄 테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그럼 내일 보자”라며 미소 짓고는 미라르마는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다행이야. 미라르마 씨에게 들키지 않아서……’

     해프닝을 살려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미라르마에게 지금 상황을 들키지 않는다는 목적은 달성했기 때문에 조금 안심했다.

     ‘아직 기회는 있어…… 다음에는 꼭 도망쳐야해……’

     방금도 해프닝이——의도적인 걸지도 모르지만—— 있었던 것이다. 아직 도망칠 기회는 있을 터다. 라며 니나가 마음을 다잡고 있자, 안제는 니나를 구속하고 있는 메이드들에게 말을 건다.

     “두 사람은 주인님을 따라가 줘. 니나 님은 내가 방까지 안내해드릴 테니까”
     ““알겠습니다””
     “어……”

     두 사람이 목소리가 겹치고 단단했던 구속이 풀린다.
     ——절호의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니나는 너무 혼란한 나머지 미라르마를 따라가는 두 사람을 눈으로 쫒고 만다.
     그녀들은 혼란해하고 있는 니나에게 살짝 미소 짓고는 미라르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니나를 돌아본다.

     “후후……”

     그녀들의 얼굴에는 욕실에서 보여줬던 것 같은 가학적인 미소가 달라붙어 있었다.

     ‘——윽!!’

     그 섬뜩한 미소를 본 순간 공포심이 니나에게 안 좋은 예감을 가져다준다.

     ‘서, 설마, 미라 씨도 끌어드릴 생각인가!?’

     자신이 세운 가설에 몸을 떤다.
     혹시 이 가설이 맞는다면 이미 ‘부담을 줄 수 없다’는 말을 할 때가 아니라 지금당장 미라르마에게 위험을 전해야만 한다. 착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무른 판단으로 미라르마에게 자신과 같은 꼴을 당하게 할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해 달려 나가려고 하는 니나를 안제의 부탁이 가로막는다.

     “‘메이드가 마중을 올 때까지 절대로 그 방에서 나오지 말아 주세요’”
     “……윽”

     달리기 위해 힘을 줬던 다리는 미라르마가 있는 복도가 아니라 문이 열린 객실로 움직인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함께 들어온 안제가 문을 닫는다.
     단 한마디로 즉석 감옥이 완성되었다.

     “‘이제 말씀하셔도 돼요’. 후후, 그러면 니나 님. 내일 만나요. 아침에 마중을 올 테니까요♡”
     “기다——!!”

     제지의 말을 끝까지 하기도 전에 안제는 무정하게 방을 나간다.

     “큭…… 이!”

     닫혀버린 문을 전력으로 열어보려고 하지만, 부탁의 영향인지 문고리에 손을 얹은 순간 수수께끼의 힘에 의해 튕겨 나가 만지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열쇠가 잠긴 것도 아니라서 간단하게 열 수 있을 문이, 지금의 니나에게는 두꺼운 철문이나 마찬가지였다.

     “큭!!”

     분노와 초조가 뒤섞인 감정을 토해내듯이 주먹으로 문을 때린다.

     “아냐, 안 돼……. 진정해야지”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니나가 상황을 바꾸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감정에 맡겨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니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혹시 미라르마가 휘말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불안함이 스며들어 니나를 초조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면 안 된다며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깊게 심호흡을 한다.

     “……스읍……하아—……”

     깊게 심호흡을 하자 약간은 진정된 것 같은 기분과 함께 냉정함을 되찾아 의미 없는 저항은 관두고 비치된 침대에 앉는다.

     ‘일단 지금 생각해야 하는 일은…… 맞아, 내일 해야 할 일의 정리……’

     조금 전의 욕실에서 생각했던 일을 머릿속에서 정리한다.
     일단 제 1 목표는 미라르마의 구출이다. 약간이라도 그녀에게 피해가 갈 가능성이 있다면 이건 절대로 해야만 하는 일이다.
     메이드들이 이상해져 버린 것은, 위험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호의에 기대고만 니나의 책임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미라르마만이라도 구출해 최저한의 의리는 지켜야 한다.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책임을 지는 방법이다.
     메이드들이 미라르마에게 무언가를 하리라는 것은 확정적이지는 않지만, 그녀들이 보여준 미소는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것처럼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다 니나와 같은 꼴을 당하게 하는 것만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
     그리고 제 2 목표.
     이것은 당연히 저택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메이드들의 눈을 피해 미라르마와 합류해서 들키지 않도록 밖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
     그렇게 탈출한 후에는 바로 미라르마와 거리를 둬야겠지.
     메이드들이라는 전례가 있는 이상, 미라르마와 접촉하는 시간은 가능한 한 짧게 가져 개 목걸이의 힘을 받게 될 리스크를 조금이라도 줄여야 한다.
     미라르마를 저택에서 데리고 나가는 일도 가능하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고 싶지만, 개 목걸이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정말로 그 3명뿐인지, 정상인 메이드와 접촉한 순간 바로 개 목걸이의 힘으로 새로운 피해자가 되지 않을지 라는 2개의 걱정 때문에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인가”

     아침에 마중을 온다고 했던 안제가 내일은 어떤 행동을 일으킬지 모르는 이상 세세한 부분을 결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대전제인 2개는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목표다.

     “후와아……”

     일단락을 짓자 쌓인 피로가 빠져나오는 듯한 커다란 하품이 나온다.
     일이 어떻게 되던 내일은 절대로 편한 하루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내일을 위해서라도 오늘은 빨리 잠에 들어 피로를 풀어야 한다.

     “……푹신하다”

     앉아있던 침대에 그대로 몸을 눕히자 이 저택에서 눈을 떴던 때처럼 아주 부드럽고 기분 좋은 감촉이 니나의 몸을 감쌌다.
     지독한 꼴을 당해 지칠 대로 지친 니나는 기분 좋은 느낌에 감싸여 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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