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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 빨간 여성
    소설/예속의 개 목걸이 2020. 5. 15. 21:42

     던전에서 나오자 밖에는 이미 태양이 완전히 떴고 입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무기를 들고 있거나 두꺼운 갑옷을 입고 있는데 초라한 넝마 조각을 몸에 두르기만 한 니나는 굉장히 눈에 띄었다.
     조금 전까지 같이 있던 필름은 “다음주에 또 만나요”라는 부탁을 남기고는 먼저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있어줬으면 할 때에는 없다니’

     여기저기에서 찌르는 듯한 시선을 받는 니나는 ‘자신을 바보 취급 하고 있는 거 아닐까?’라는 피해망상에 시달리게 되어 혼자가 아니어서 얻을 수 있었던 안심감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몇 번을 체험해도 이런 상황에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니나는 부끄러움을 얼버무리기 위해 뺨을 친다.

     ‘신경 쓰면 안 돼…… 지금은 어떻게 숙소로 돌아갈지를 생각해야지’

     의식적으로 마음을 다잡고 머릿속의 지도를 펼친다.
     가장 처음 생각나는 것은 중앙대로다. 여기서 숙소까지 가장 가까운 길이다.
     하지만 중앙대로에는 커다란 문제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단순히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주목을 받는 것뿐이라면 어쨌든 인파 속에는 니나의 모습을 보고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그때 개 목걸이의 힘이 발동한다면 또다시 피해자를 늘리게 될 가능성이 생긴다.
     그렇다면 누구도 말을 걸지 못하도록 달려가면 되지 않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틀림없이 속옷을 노출시키게 될 것이다.
     이미 부끄러운 꼴을 하고 있다고 해서 더 부끄러운 꼴을 드러내도 괜찮다고 할 정도로 니나는 달관하지 못했다.

     ‘역시 그 길밖에…… 없나’

     머릿속에서 생각을 떠올렸다가 없애는 것을 반복하다 결국에는 알몸으로 돌아갔을 때처럼 뒷골목을 지나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응?”

     거기까지 생각을 끝마치자 시야 한구석에 녹색 빛이 들어왔다.
     그 빛에 시선을 주자 그곳에는 마법을 영창하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니나는 자신도 모르게 “아!”라는 탄성을 내고 만다.

     ‘맞아, 전이마법이 있었지!!’

     완전히 잊고 있던 편리한 마법의 존재에 니나의 표정이 풀어진다.

     ‘전이마법만 있으면 돌아갈 길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지!’

     바보 같은 자신에의 분노를 일단 삭이고는 영창을 개시한다.
     지금의 모습을 같은 숙소의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지만 알몸인 것보다는 낫다.

     “……어라?”

     하지만 어째선지 마법은 발동하지 않아서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평소라면 방금 본 사람들처럼 녹색 빛이 몸을 감쌌을 텐데 그 편린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째서인지 생각하다 떠오른 사실에 니나의 어깨가 축 처졌다.

     ‘그래. 슬라임에게 마력을 전부 빨려서 그런 거구나……’

     오늘 알게 된 효과의 충격 때문에 자신이 알고 있던 유명한 효과를 잊고 있었다.
     접촉에 의해 흡수되는 마력의 양은 절대로 많지는 않지만 그렇게 긴 시간동안 접촉하고 있었으니 모든 마력을 흡수당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역시 걸어서 돌아가야 하나’

     “하아”

     오늘도 뒷골목에 신세를 지게 된다고 생각하자 저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순간 보인 희망 때문에 낙담은 더욱 커졌다.

     ‘여기에 서 있어봤자 눈에 띌 뿐이야’

     지금 니나가 서 있는 장소는 던전의 입구치고는 사람이 적은 장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의 왕래가 적지는 않다. 가끔 지나가는 모험가들은 니나의 모습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짓거나 걱정하는 시선을 보내는 등 여러 반응을 보내고 있다.
     계속 이곳에 서 있으면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는 것도 시간문제다.

     “……좋아!”

     한 번 더 뺨을 치고는 기합을 새로이 넣는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니나는 숙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왜 저런 모습으로 걷고 있는 걸까?”
     “습격당했다던가?”
     “이 마을은 노예가 금지 아니었나?”
     “그렇기는 한데…… 어디 슬럼가의 아이 아냐?”

     ‘…………’

     아마도 자신을 말하고 있는 듯한 속삭임들을 필사적으로 의식의 바깥으로 밀어내고 ‘조금만 더 참으면 돼’라며 자기 자신을 타이른다.
     지금 걷고 있는 곳은 중앙대로다. 사람이 가장 많은 이곳을 지나기만 하면 들려오는 목소리와 시선도 조금은 괜찮아질 것이다.

     ‘빨리, 빨리 지나가자……’

     어째서 니나가 그런 곳을 걷고 있냐면 던전 입구에서 바로 뒷골목으로는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뒷골목에 가기 위해서는 절대로 몇 분 정도 중앙대로를 지나가야만 한다.

     ‘우우, 역시 부끄러워……’

     사람은 아침에 비해 명백하게 늘어나 필연적으로 많은 시선들이 날아온다.
     니나는 더 이상 보여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넝마가 말려 올라가지 않을 정도로만 속도를 올리려고 했다.

     “어……라?”

     하지만 갑자기 무릎을 꿇는 몸. 무언가가 발에 걸린 거라 생각해 발에 힘을 줘보지만 전혀 라고 해도 될 정도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아니, 발뿐만이 아니다.
     마치 온몸에 전기가 통한 것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슬라임이 몸을 기어다녔던 후와 같은 감각이었다.

     ‘전기……?’

     그때 니나의 머리에 번뜩이는 생각.
     슬라임이 몸을 기어다닌 후에 느껴졌던 그 저릿한 감각. 그것은 용해의 힘에 의한 현상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설마, 그것만이 아니라 마비 효과도 있는 거였어!?’

     원인을 알게 된 순간 몸에 완전히 힘이 빠지게 되어 말 그대로 무너지듯이 지면에 쓰러진다.
     다행히도 무릎을 꿇고 있었던 덕분에 기세 좋게 얼굴을 부딪치는 일은 없었지만 이런 길 한복판에서——

     ‘……잠깐’

     거기까지는 자신을 냉정하게 분석할 수 있었던 니나지만 갑자기 ‘자신의 복장’을 떠올려버려 분석이 끊어진다.
     아슬아슬한 길이의 넝마 조각. 그것만을 몸에 두른 상태로 이런 자세를 취하면 어떻게 될지는 명백하다.

     ‘패, 팬티!! 팬티가 다 보이잖아!!’

     상황을 분석하던 판단력이 갑작스레 전부 사라지고 수치심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지금 니나에게는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보다도 속옷을 보여지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멀리서는 보이지 않겠지만 혹시 가까이에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곳이 말도 안 될 정도로 젖어 있다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그, 그것만은 어떻게든 막아야 해!!’

     마비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해 변명조차 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는 무슨 말을 들어도 반론이 불가능하다.

     “읏! ……윽!”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 보려고 한다. 하지만 마비에 의해 굳어버린 몸은 조금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갑자기 쓰러진 소녀에 대한 웅성임이었다.
     이 노예 같은 모습이 걱정에 박차를 가하는 건지 니나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인다.

     ‘안 돼, 안 돼!!! 보지 말아줘, 가까이 오지 말아 줘!!!’

     주위의 사람들이 몇 명인가 니나의 곁에 달려와 “괜찮니?” “왜 그러니?”라는 질문을 던진다.
     말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니나는 그에 대한 대답도 하지 못하고 걱정을 부채질당한 사람들이 더 몰려온다. 그야말로 악순환이다.
     주위의 사람들은 선의의 행동이었겠지만 의식이 남아있는 니나에게 있어서는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나, 이런 야한 모습으로 이렇게 주목을——’

     “너, 의식은 있니?”
     “아…… 아……”

     달려왔던 사람 중에 한 사람, 빨간 머리카락의 여성이 니나의 손을 잡고 말을 건다.
     그에 대한 대답을 하려고 하지만 아무리 힘을 짜내도 제대로 말을 꺼낼 수가 없다.

     “의식은 있는 것 같은데…… 외상은 없는 것 같고 마비인가? 병원에 데려가는 게 좋아 보이는데……”

     빨간 머리카락의 여성이 뒤를 본다.
     니나의 각도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이 무슨 신호였는지 “알겠습니다”라며 여러 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내가 너를 도와줄게. 일단은 우리 집에 오렴. 치료를 해줄게”

     ‘고맙지만…… 안 돼…… 이 사람까지 휘말리고 말 거야!’

     그렇게까지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숙소까지만 데려다 주면 된다. 라고 어떻게든 전해보려고 하지만 말을 할 수 없는 상태로는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어떻게든 고개를 저어보려고도 했지만 목은커녕 다른 부위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이런저런 일을 시도하는 사이에 빨간 머리카락의 여성의 뒤에 새로이 두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나 니나를 일으켜 세운다.

     “아마 마비라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혹시나 하는 일도 있으니까 가능한 한 흔들지 않게 주의해 줘”
     “알겠습니다”

     빨간 머리카락의 여성의 말을 신호로 양옆의 사람들이 니나를 천천히 옮기기 시작한다. 몇십 초인가 걷고는 계단 같은 곳을 올라가는 느낌이 있던 후에 뒤쪽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적어도 어디에 온 것인지 정도는 확인하고 싶었지만 옮겨지면서 눈꺼풀이 닫히는 바람에 시야는 계속 깜깜한 채였다.
     하지만 밖에서 들리는 말의 울음소리에 아마도 마차에 태워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했다.
     등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각은 의자인 걸까? 아무래도 니나는 그곳에 뉘어진 것 같았다.

     “안심하렴. 금방 괜찮아질 거야”

     바로 위에서 그 빨간 머리카락의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자애로운 목소리에 니나는 어딘가 안심이 되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것은 니나가 최근 느끼지 못한 상냥함이었다.
     쌓여있던 피로도 있어서 조금씩 의식이 흐려졌다.
     그리고 그 상냥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를 들으며 어느샌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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