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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 은신처 · 상편
    소설/예속의 개 목걸이 2020. 5. 11. 23:24

     “안 돼!!!! 안돼에에에에에엣!!”

     참지 못하고 싸버렸다기보다는 오줌을 멈춰줘야 하는 근육이 이완되어서 그런 것처럼, 멈추려고 해도 힘이 들어가질 않아 멈추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한 번에 오줌을 다 싸지 못하고 계속해서 흘리며 바닥의 웅덩이가 점점 커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조금씩 목숨이 갉아 먹히는 듯한 상황에 니나의 눈에 눈물이 맺히고 만다.

     “아…… 안 돼. 머, 멈춰……”

     하지만 그런 니나의 감정 따윈 알 바 아니라는 듯 슬라임은 점점 위로 올라가 배 근처의 옷을 녹여간다.

     “안 돼!! 싫어…… 왜! 왜 올라오는 거야!”
     “글쎄요? 몬스터의 생태는 연구자들도 밝혀내지 못했는데 제가 알 리가 없잖아요”

     껄껄 웃는 필름의 웃음이 점점 상스러운 미소로 바뀐다.

     “그보다 선배, 그렇게 큰소리를 내도 돼요?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잊고 계신 건 아니겠죠♡”
     “어…… 아, 아앗……!”

     수치심에 정신이 들어 서둘러 주위를 확인한다. 다행히도 주위에 사람의 기색은 없었지만 언제 사람이 올 줄 몰라 안심할 수는 없었다.

     “꽤나 커다란 비명이었으니까요~ 누군가가 구하러 와 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말…… 하지 말아 줘……”

     더 이상 대답을 할 힘도 남지 않아 울고만 있는 니나를, 필름은 더욱 몰아붙인다.

     “뭐, 혹시 누가 온다고 해도 ‘방심하는 바람에 슬라임에게 붙잡혀서 반격 한 번 못하고 녹아버렸어요♡’라고 제가 잘 설명 할 거지만요. 그래도 상관없죠?”
     “그런 거…… 믿어 줄 리가, 없어…… 읏, 아, 안 돼……”

     결국 가슴에까지 도달한 슬라임이 불쾌한 용해음을 내며 가죽으로 만든 옷을 녹여간다.

     “제발…… 부탁이야…… 이런 일은 이제 그만둬 줘”

     떨쳐내기 위해 몸을 움직이고 싶어도 몸은 조금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수 초 후에는 마지막 보루였던 브래지어도 완전히 녹아버려 니나는 “안 돼”라는 작은 비명을 몇 번이고 되풀이한다.

     “선배의 옷은 이걸로 전부 녹아버렸네요♡ 가슴도 보지도 전부 다 보여요♡”
     “우우…… 훌쩍, 보지 말아 줘……”

     노출된 몸을 찬찬히 시간(視姦)당해 니나는 눈물을 흘린다.
     가슴에서 목까지 올라온 슬라임이 혹시 개 목걸이를 녹여주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역시 매직 아이템인 개 목걸이에 슬라임의 용해는 효과가 없었다.

     “그럼 이제 일을 끝마친 슬라임은 처분할까요”

     필름이 슬라임을 향해 손바닥을 펼치고 무언가의 마법을 영창 한다.
     순간 손바닥이 빛을 내며 작은 사이즈의 화염구가 나타나 조용히 슬라임을 향해 날아갔다.

     쉬익.

     하고 슬라임이 순식간에 녹아 액체가 되기도 전에 증발해서 사라진다. 니나를 잔뜩 괴롭혔던 몬스터의 싱거운 최후였다.
     ……아니, 원래 슬라임이라는 건 이 정도의 몬스터다.
     모험에 익숙하긴커녕 처음 던전에 들어온 사람에게도 순식간에 당하는 존재. 그런 슬라임에게 이렇게까지 당한 사람은 니나 말고는 없겠지.

     ‘나는 이런 거에게 옷이 다 녹을 때까지 당하고, 시, 실금까지……’

     방금까지의 체험이 머릿속에서 되살아나 부끄러움과 분노가 섞인 눈으로 필름을 노려본다.
     필름은 그런 시선을 받으면서도 손에 든 사진을 보고는 기쁘게 웃는다. 니나의 분노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이다.

     “이야~ 역시 오길 잘했어요. 슬라임 덕분에 엄청나게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어요. ……아, 잊고 있었네. ‘마음대로 움직이셔도 되요’”

     부탁이 해제된 순간, 힘이 빠져 미궁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는다.

     “우…… 아……”

     그와 동시에 찰박, 하는 물소리. 니나는 자신의 오줌으로 만들어진 웅덩이에 주저앉아버리고 만 것이다.

     ‘아, 아아…… 다리에도, 엉덩이에도 오줌이……’

     비참함에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그대로 일어나려고 한다.

     ‘어, 라?’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부탁’으로 움직임을 봉인 당했을 때의 느껴지는 느낌과는 다른, 힘을 주기위한 기관이 마비된 듯한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조금 전까지 일어서 있을 수 있었던 건 부탁의 힘이었던 모양이다.

     “아, 우우……”

     엉덩이나 허벅지에 전해지는 미지근한 감각에 또다시 눈물을 흘리고 만다.

     “아이참 선배. 그렇게 울고만 있지 마시고 빨리 일어나요. 이동하지 않으면 정말로 다른 모험가가 와 버릴지도 몰라요”
     “아, 아냐……. 훌쩍……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서, 움직이지를 못하는 거야”
     “움직이지 못해요? ……힘이 빠졌을 뿐, 이라는 건 아니죠?”
     “아냐…… 팔에도, 다리에도…… 힘이 전혀 들어가질 않아……”

     일단 움직이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만, 그뿐이다. 무언가를 붙잡는 것도, 몸을 일으키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구나, 역시 그런 거였어”

     혼자서 납득한 필름은 흥미 깊게 니나의 몸을 바라본다.

     “선배, 잠깐 눈 좀 감아 주실래요?”
     “눈을……? 왜, 왜? 이번엔, 무슨 짓을 하려고?”
     “됐으니까요. 정말이지, 귀찮기는 ‘지금 당장 눈을 감아 주세요’”
     “자, 잠깐……”

     부탁의 힘에 의해 강제적으로 눈이 감긴다.
     이번에는 도대체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불안해하고 있자——

     “우왓”

     차가운 무언가가 몸에 뿌려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이건, 물?’

     아마도 필름이 물을 뿌리는 마법을 사용한 거겠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니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물의 기세는 그렇게 강하지 않아서 아프지 않았지만, 어떤 의도로 이 마법을 사용한 건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라?”

     전신에 느껴지던 찌릿함이 사라져 간다.
     아직 조금은 찌릿함이 느껴지지만 설 수 있을 정도로는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선배, ‘이제 눈을 떠도 돼요’”
     “……뭘 한 거야?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됐어……”
     “뭐긴요, 그냥 물을 뿌렸을 뿐이에요. 그걸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이유는…… 아직 조금 붙어있는 그게 원인이에요”

     필름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고는 알아챈다.
     그곳에 붙어있던 것은 반투명의 노란색 점액이었다. 슬라임이 기어다닐 때 붙어버린 슬라임의 일부다.
     아무래도 피부에 남아있던 슬라임의 점액이 몸을 마비시키는 원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슬라임의 능력은 마력 흡수와…… 오늘 들었던 마력을 가진 것 외의 것을 녹이는 능력이었을 터…… 설마 다른 능력도 가지고 있는 건가?’

     의문이 점점 떠올랐지만 일단은 일어서기 위해 다리와 허리에 힘을 준다.
     물이 뿌려져 더러워졌던 허벅지와 다리가 어느 정도 깨끗해진 것에는 솔직하게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선배도 이제 걸을 수 있죠? 그럼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가죠”

     필름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어…… 다음 목적지라니? 오늘은 이걸로 끝 아니야?”
     “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 슬라임은 전초전인데요. 진짜는 지금부터예요♡”
     “지, 진심이야!? 그, 그보다 이대로 걸으라고!?”

     니나는 녹아버려 군데군데에 옷감이 남아있을 뿐인 몸을 가리듯이 감싸 안고 절망에 물든 표정으로 필름을 쳐다본다.

     “당연하죠. 일일이 돌아가는 건 귀찮잖아요?”
     “그, 그치만 오늘은 안까지는 가지 않을 거라고 조금 전에 필름이……”
     “네. 안까지는 안 갈 건데요? 갈 곳은…… 후후, 뭐, 따라오시면 알아요”

     수상한 미소를 띄우는 필름을 보고 니나는 뒷걸음질을 친다.

     “마지막까지 저를 잘 따라와 주시면 가지고 온 옷을 드릴 테니까요♡ 자, 빨리 가요”
     “그, 그치만……”
     “아~ 다른 모험가에게 발견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발견되면 ‘변태’라는 낙인이 찍힐 테니까요♡ 역시 만나게 된 모험가에게 설명하는 게 좋겠죠? “슬라임에게 져서 옷이 전부 녹고 말았다”고♡”
     “그건……”

     슬라임은 마법을 쓸 줄만 안다면 어린애라도 쓰러뜨릴 수 있는 몬스터다.
     그런 몬스터에게 일방적으로 공격당해 옷까지 잃었다는 말을 도대체 몇 명이나 믿어 줄까.
     혹시 믿어 준다고 해도 웃음거리가 될 거라는 것은 확정적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일부러 져서 옷을 녹이는 변태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도 충분히 있을만한 일이다.

     “……알겠어, 가자”

     타협에 타협을 쌓아 한숨과 함께 승낙한다.
     어느 쪽을 골라도 지옥이라면 최악의 경우에도 옷을 받을 수는 있는 필름을 따라가는 쪽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개 목걸이의 힘을 이용해서 억지로 따라오게 만들지 않는 이유에도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니나 자신의 의지로 결정을 하게 해서 어떤 꼴을 당해도 ‘자신의 탓’이라는 정신 상태를 만들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하아…… 이번에는 어떤 꼴을 당하게 되는 거지’

     점점 멀어져 가는 필름의 뒤를 가슴과 고간을 숨기면서 종종걸음으로 뒤쫒았다.



     “자, 도착했어요♡”
     “……여기가 목적지?”

     돌로 된 미궁 안에서 갑자기 나타난 금속으로 만들어진 문을 보고 놀란다.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니나 자신이 직접 와본 것은 처음이었다.

     “여기에서 몬스터와 만나면 귀찮아지니까 빨리 들어가죠”

     무거워 보이는 철문을 망설임 없이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필름을 뒤쫒는다.

     ‘그러고 보니, 보는 것도, 들어가는 것도 처음일지도’

     이 시설의 이름은 은신처. 던전 안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휴식용 공간이다.
     꽤나 편리한 시설이지만 당연히 아래로 내려갈수록 몬스터도 점점 강력해져 이런 시설을 만들 여유도 사라져 가기 때문에 초보 모험가들을 위한 구제시설 같은 곳이다.

     ‘이런 느낌이었구나’

     이런 시설은 니나가 모험가가 됐을 때에는 없었던 것이기 때문에 여기저기에 눈길을 주고 만다. 어느 정도 강해지면 위층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아래층을 향하기 때문에 이용하는 것이 처음인 것만 아니라 들어와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안에는 테이블과 의자, 정수기, 그리고 간단한 치료가 가능한 의료 키트가 구비되어 있어서 최저한의 수분 보급과 치료가 가능해 보였다.
     필름은 의자에 앉으며 니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선배, 결국 저를 따라오셨는데요 여기서 무슨 일을 할 것 같아요♡?”
     “……그런 거, 알 리가 없잖아”
     “아이참~ 그렇게 쌀쌀맞게 굴지 마시고~ 이곳에 있는 걸 써서 놀 거예요.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여기에 있는 거라니……”

     주위를 둘러보지만 ‘그런 행위’에 쓰일만한 도구는 찾지 못했다.
     있는 것은 물이나 의료 키트정도 뿐이었다.

     ‘안 돼…… 모르겠어. 무슨 일을 하려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니나가 떠올릴 수 있는 범위 내에 “이거다!”라고 말할 만한 답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니나는 더욱 경계했다.
     필름이라면—— 정확하게는 개 목걸이의 힘에 의해 이상해진 인간이라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이쪽을 욕보일 방법을 떠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네~에. 시간 초과♡ 이번 건 엄청 간단했는데 왜 모르시려나~ 정답은—— 이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필름이 가리킨 것은——

     “……테이블?”

     사용할 물건으로 지명된 도구를 보고서도 니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떻게 쓸 것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름은 히죽거리며 ‘부탁’을 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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