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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 후배
    소설/예속의 개 목걸이 2020. 5. 3. 16:55

     “으으, 역시 좀 부끄러운데……”

     밤거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스커트의 끝을 꽉 잡고 니나는 중얼거렸다.
     사람이 많은 중앙대로를 걷고 있기 때문에, 설령 누군가 이상한 옷을 입고 있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이 쓰이고 만다.
     전처럼 뒷골목을 지날까도 생각해 봤지만 이번에는 딱히 알몸인 것도 아니고, 그저 개인적으로 부끄러운 옷을 입고 있는 것뿐이라 이상하게 보이더라도 빨리 숙소까지 가는 것을 우선시했다.

     ‘역시 조금 늦어지더라도 뒷골목을 지나는 게 나았어……’

     하지만 그 생각이 안이했다는 것을, 중앙대로를 5분정도 걸은 니나는 통감했다. 설령 상대에게 흥미가 없다고 해도, 니나 자신이 주위에 신경을 써버리고 만다.
     아예 숙소까지 달려서 갈까까지 생각하던 중

     “어라? 니나 선배? 이런 시간에 별일이네요!”

     앞에서 걸어오는 소녀가 갑자기 니나의 이름을 외쳤다.
     깜짝 놀란 니나는 흠칫흠칫 자신을 부른 사람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필름이구나”

     인파속에서 발을 세우고 이쪽을 향해 다가오며 손을 흔드는 소녀—— 필름에게 니나도 가볍게 손을 흔들어준다.
     필름은 니나의 모험가 후배로 이 마을에서 생긴 얼마 없는 친구 중 한 사람이다. 비취색의 커다란 눈동자와 밤색 머리카락이 특징적인, 눈부신 해님 같은 귀여운 소녀다. 목에는 항상 카메라를 걸고 있으며 겉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랗고 검은 카메라가 배 근처에 떠 있는 것이 특징적이었다.

     “선배~”
     “우왓”

     달려오는 기세로 안겨 와서 니나의 얼굴이 필름의 가슴에 파묻힌다.
     필름의 스타일은 평균적이지만, 전체적으로 작은 니나와는 꽤나 키 차이가 생기고 만다.
     니나는 자신을 안고 있는 팔을 억지로 때어내고 “푸하”라는 숨소리와 함께 가슴에서 얼굴을 빼낸다.

     “오랜만이네요! 요즘에 전혀 마주치지 않아서 외로웠다고요?”
     “아, 알겠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보잖아. 부끄럽다고…… 듣고 있어!?”

     니나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지 때어낸 팔을 다시 허리에 감싸고 꼬옥 안는다. 니나는 그 팔 안에서 버둥대지만 키 차이와 신체 능력의 차이는 어떻게 해볼 수 없어서 의미 없는 저항으로 끝났다.



     1, 2분정도 그렇게 안겨서 사람이 적은 곳까지 이동하자 필름도 진정했는지 니나를 풀어주었다.
     그동안 계속 머리를 쓰다듬어 지거나 가슴이 계속 닿아있어서 지친 니나는 고개를 숙였다.
     필름은 표정을 바꾸지는 않고 몸짓만으로 미안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야~ 죄송해요. 오랜만에 만나서 기쁜 마음에 그만”
     “그런 방법 말고 좀 더 다른 방법으로는 안 돼……?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잖아……”

     불만스럽게 말하며 주름이 지고 만 옷을 만지작거리고 있자 “어라”하고 필름이 니나에게 말을 건다.

     “선배 오늘따라 귀여워 보인다 했더니…… 평소와 옷의 분위기가 다르네요. 선배답지 않달까”
     “으……”

     니나의 몸을 찬찬히 뜯어보는 필름에게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을 친다.
     그 반응을 놓치지 않고 필름은 눈을 빛냈다.

     “……혹시 사이좋은 사람과 데이트라도?”
     “아, 아냐”

     당황해하며 필사적으로 부정하지만 필름은 “진짜요~? 뭔가 감추고 있는 것 같은데……”라며 아직 의심하고 있는 듯했다.

     ‘데이트…… 하기는 했지만 그 때는 이 옷이 아니었고 그런 부끄러운 일은 누구한테도 말 못하지……’

     그 후로도 추궁하는 필름의 말을 적당히 회피하자 포기했는지 “왜 그렇게 감추는 걸까”라며 입을 삐쭉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금방 기뻐하는 표정을 짓고는 한 장의 사진을 꺼냈다.

     “말해주지 않으니까 제가 말할게요…… 저 알고 있다고요? 점심에 그 교회의 시스터와 데이트했다는 거!”
     “보고 있었어!?”

     들키지 않도록 적당한 대답을 하던 니나였지만 이번만은 큰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보여졌어……? 그 데이트가? 혹시 그 부끄러운 옷만이 아니라 소, 속옷도……’

     급속도로 볼이 뜨거워져 필름과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하게 된다. ‘그런 모습’을 보여졌다고 생각하면 당연하다. 지금의 자신이 필름에게 어떻게 생각될지 무서워져 눈물조차 흐를 것 같다.

     ‘나도 좋아서 그런 모습을 한 게 아닌데……’

     무릎 위는커녕 거의 다 보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셔츠 한 장으로 밖을 활보했던 모습을 떠올린다.

     “네. 라고는 해도 얼굴을 살짝 본 것뿐이지만요. 저도 일이 있었거든요. 증거로 쓰자고 생각해서 사진만 찍고 지나갔어요”
     “얼굴만…… 제대로 본 건 아냐?”
     “그렇네요. 사실은 인사라도 할까 했는데요 선배 근처에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무슨 행사라도 있었나요?”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필름을 보고 니나는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 음, 응. 하, 하고 있었어. 유명한 피에로가 길거리에서 게릴라 공연을 했어…… 우리도 그걸 보러 간 거야”
     “헤~? 소문도 없었는데 정말로 돌발적인 공연이었나 보네요”

     거짓말이었지만 속은 것처럼 보이는 필름을 보고 니나는 안심했다.
     사람이 모인 이유는 틀림없이 니나가 치녀같은 모습으로 속옷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멀어서 거기까지는 확인하지 못한 모양이다.

     ‘아니 그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 속옷을……’

     갑자기 볼을 붉히는 니나를 의아하게 쳐다보며 필름은 들고 있던 사진을 니나에게 건넨다.
     그곳에는 확실히 니나와 리네아의 모습이 비춰져 있었고 정보대로 목에서 위만이 보이는 사진이었다. 얼굴에 홍조를 띄우고 있는 니나와 무슨 일이냐는 듯한 표정을 짓고 니나는 바라보는 리네아가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게 했다.
     필름은 사진속의 니나를 가리키며 저속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새빨간 선배는 처음 봤어요♡ 시스터와는 언제부터 이런 관계가? 이 풋풋함…… 꽤 최근이죠?”
     “아, 아냐! 리네아 씨와는 그런 관계가…… 아”

     그 후로 시스터라고 부르지 않도록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이름을 부르는 연습을 한 탓인지 시스터를 이름으로 말하고 말아 이미 올라가 있는 필름의 입꼬리가 더욱 위로 올라갔다.

     “봐요! 전에는 시스터라고 불렀었는데 어느새 이름으로 부르는 관계가……! 이야~ 축하드려요!!”
     “그러니까, 아니라고……!”
     “그 옷도 혹시 시스터…… 여친의 센스인가요? 으~응…… 역시 이 마을에서 가장 천재라는 시스터. 옷의 센스도 좋군요!”
     “부, 분명히 이 옷을 고른 건 리네아…… 시스터지만, 여친인 건……!”

     반론하는 니나의 목소리가 필름에게는 전혀 닿지 않는 모양인지 있지도 않은 두 사람의 관계를 질문해온다.
     니나는 너무 난처해서 “아니, 저기, 그러니까” 라는 말만을 하고 있자 갑작스레 질문이 멈추고 필름의 눈빛이 변했다.

     “왜, 왜 그래?”

     필름의 시선이 재회했을 때처럼 니나를 찬찬히 뜯어보듯이 바라보고 있다.

     “구후후, 다시 보니 그 옷…… 선배에게 엄청나게 어울리네요. ……사진 찍어도 돼요?”
     “아, 안 돼”

     니나는 카메라를 쥐려고 하는 필름의 손을 막는다.
     필름이 가지고 있는 카메라는 리아스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비싼 물건으로 엄청난 고성능이다.
     타이머나 플래시, 줌 등 각종 기능도 충실하며 큰 특징으로 찍은 사진이 바로 현상된다는 기능이 있다.
     이정도의 물건이라면 말도 안 돼는 가격이 되어 숙소비로는 계산이 쫒아가지 못하게 되지만, 필름은 그것을 한 푼도 주지 않고 손에 넣었다.
     그 카메라는 매직 아이템으로 모험가로서 던전에서 손에 넣은 것이기 때문이다. 왜 팔지 않는지 니나는 의문이었지만, 본인이 말하길, 한 번 쓰면 다른 카메라로는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라고.

     “에이~ 모처럼인데 찍게 해주세요. 선배가 이렇게 귀여운 옷을 입고 있는 걸 이 후에 제가 보게 될 가능성도 엄청 적을 테니까 기념으로! 제발!”
     “자, 잠깐! 멋대로 찍지 마!”

     니나는 저항했지만, 카메라에 손을 뻗기도 전에 셔터음이 울리고 카메라 상부에 있는 인쇄기관이 소리를 낸다.

     “후후, 선배. 그렇게 날뛰어도 소용없어요. 이 카메라에 잡히면 아무리 격렬하게 움직여도 흔들리지 않으니까…… 봐요”

     그렇게 말하며 현상된 사진을 니나에게 보여주듯이 흔드는 필름.
     필름의 말대로 사진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확실하게 귀여운 옷을 입고 볼을 붉히고 있는 니나가 찍혀있었다.

     “이, 이리 내!!”
     “에이~ 왜 제가 찍은 사진을 선배한테 줘야 해요?”
     “내가 피사체니까 그 사진의 권리는 나한테 있어!”

     니나는 소리를 지르며 사진에 손을 뻗지만 필름은 그 손을 피해 머리 위로 사진을 들어올린다. 그렇게 높은 위치는 아니지만 키 차이가 커서 니나의 손은 닿지 않았다.

     “그 쪽이 그럴 생각이라면……”

     니나는 머리 위의 사진에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눈빛을 바꾸어 주먹을 쥔다.

     “……하앗!!!”
     “꾸엑”

     퍼억, 하는 좋은 소리와 함께 필름의 명치에 주먹이 빨려 들어간다. 아무리 힘이 약한 니나라도 급소를 공격하면 대미지를 주는 정도는 가능하다. 작게 신음하는 필름에게 한 방 더 때려 넣는다.

     “잠깐, 선배!! 명치!! 명치는 안 된다니까요!! 꾸엑”
     “그럼!! 빨리!! 내놔!!”
     “아,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집요하게 명치를 때리는 니나에게 공포를 느낀 건지 필름은 뒷걸음질 치며 사진을 니나에게 건넨다. 그 표정에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과 즐겁다는 표정이 반반 섞여 있는 듯이 보여서 조금 전의 대화가 필름의 장난이었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하아…… 하아…… 정말이지……”

     필름은 금방 우쭐해하기는 하지만, 절대로 사람을 괴롭히며 기뻐하는 타입은 아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자기도 모르게 기세에 탔다고 생각하면 귀엽지 않은 것도 아니다, 라고 자신을 납득시킨다.

     ‘뭐…… 리네아 씨와 나의 관계는 진심으로 의심하고 있는 것 같지만’

     니나는 건네받은 사진을 주머니에 넣는다.

     ‘……아, 맞아! 지금은 이렇게 길게 얘기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는데!’

     사진을 건네받아서 냉정을 되찾자, 니나에게 초조함이 되살아났다.
     그 초조함은 개 목걸이 때문이다. 발생 조건은 불명이지만, 효과가 발생하면 상대를 간단하게 이상하게 만드는 이 힘은 필름이 상대라도 예외 없이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이렇게 긴 시간동안 대화를 해버렸다는 후회가 니나를 덮쳤지만, 지금 당장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먼저다.
     빨리 대화를 끊기 위해 니나가 입을 열었다.

     “마, 맞아. 나 지금부터 해야 할 일 있거든, 가볼게”
     “아, 그런가요? 그럼 제가 붙잡아버렸네요. 죄송해요”
     “아, 아냐. 신경 쓰지 마. 나도 오랜만에 만나서 즐거웠으니까”

     적당히 인사를 마치고 필름에게서 등을 돌리려고 한 순간 필름이 “아”라며 짧게 소리를 지른다.

     “그럼 선배. 마지막으로 하나 괜찮을까요?”
     “뭐, 뭔데? 나 급한데”
     “아뇨, 신경 쓰였는데 그 개 목걸이는 뭔가요? 아까부터 계속 빛나고 있는데”
     “!?”

     눈치챘을 때에는 이미 늦었었다.
     시스터 때에도 본 보랏빛 연기가 개 목걸이의 어딘가에서 흘러나와 필름의 몸을 감싼다.

     “피, 필름 도망쳐!”
     “선배 무슨 소리예요……?”

     하지만 필름에게는 연기가 보이지 않는지 동요하고 있는 니나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왜 그래요 선배. 빤히 쳐다보고는. 저한테 뭐가 붙어……”

     필름이 입을 열자 그 보랏빛 연기가 기세 좋게 입안에 빨려 들어간다. 동시의 필름의 목소리도 끊기고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진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몰라서 니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몇 초인가 지난 후 정신을 차렸는지 “피, 필름?”이라며 흠칫흠칫 말을 건다.

     “……어라. 저 뭐하고 있었죠?”
     “필름!”

     아무 이상 없이 평범한 대답이 돌아와서 니나에게서 안도의 말이 나왔다.
     하지만——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은 필름의 눈동자 때문이었다. 평소에는 비취색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듯이 보이는데 어째서인지 조금 전부터 눈동자가 탁해 보이는 것이다. 마치 리아스나 리네아가 이상해진 ‘그때’처럼.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니나의 감성은 틀리지 않았다.

     “아아, 그렇지. 기억났어요. ‘따라와 주세요’. ……오늘은 같이 마셔요. 선배♡”
     “아…… 우, 이럴 수가……”

     개 목걸이에 대해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는데도 당연하다는 듯이 ‘부탁’을 하는 것을 보고 확신한다. 이미 필름이 ‘정상이 아니다’라는 것을.
     니나는 확인하려는 것처럼 한 번 더 필름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개 목걸이의 영향을 받은 사람 특유의 신비한 요염함이 엿보였다.
     리아스, 리네아에 이어 필름까지 끌어들이고 말았다는 죄악감과, 그녀에게는 무슨 일을 당하게 될까, 라는 불안함이 섞여 니나는 울먹이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무언으로 필름의 뒤를 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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