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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공수역전? · 상편
    소설/예속의 개 목걸이 2020. 4. 29. 16:14

     “응…… 후아……”

     조금만 더 자고 싶다는 나른함을 느끼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온몸을 묘한 피로감이 지배하고 있다. 몸만이 아니라 머리도 지쳐있는 건지, 몇 분간 움직이지 않고 멍하니 있다가 움직인다.

     ‘나…… 언제 잠들었지’

     아직 안개가 낀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몇 초간 눈을 감는다.
     그리고 “으”라는 작은 신음과 함께 몸이 움찔거린다.

     ‘맞아, 나, 또 실신해서……’

     집요하게 애무받은 입술과 고간이 뜨거워지는 것 같아 서둘러 일어난다.
     언제 잠들었는지를 알았다고 해서 지금 그 일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애초에…… 여기, 어디지?’

     지금 있는 장소를 둘러보며 니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숙소에서 생활하는 니나와는 연이 없는, 마치 모델하우스처럼 잘 정돈된 방의 침대에 니나는 뉘어져 있었다.
     침실인 건지 침대 외에는 작은 책장과 램프, 조금 커다란 거울, 그리고 관엽식물이 방 한구석에 놓여 있었다.

     ‘예쁜 방이네……’

     놓여있는 물건 자체는 적지만, 여기저기에 장식되어 있는 물건들이 이 방의 주인의 센스를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가만히 방을 관찰하다가, 어느 물건에 눈이 멈춘다.
     책장 위에 장식되어 있는 액자였다.
     그 사진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책장 앞까지 이동해 손에 든다.

     ‘이거…… 나?’

     사진에 찍혀있는 것은 니나와 시스터가 교회 앞에서 피스를 하는 모습.
     기억을 되짚어 그것이 1년 정도 전에 리아스가 찍자고 해서 찍은 것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아마…… 그때는 리아스가 그 애한테 영향을 받아서 카메라를 샀었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사진을 찍었었는데’

     지금은 숙소의 창문에 장식화되었다. 숙소비 3개월 치의 카메라를 떠올리고 폭소할 것 같았지만, 동시에 이 방의 주인이 누군지 알게 되어 그것은 한숨으로 바뀌었다.

     ‘즐거웠던 추억에 잠겨있을 때가 아니네……’

     사진을 원래 있던 곳에 돌려놓고, 방문에 눈길을 주었다.
     이 사진이 있다는 것은 거의 틀림없이 시스터의 방일 것이다.
     시스터의 방이라는 것을 전제로 방을 보자, 가구의 분위기나 방안에 퍼져있는 달콤한 꽃 같은 향기도, 시스터의 이미지와 딱 맞는다고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방에 들어온 건 처음인가…… 집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사람의 집이었다는 것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지금 상태로 시스터의 집, 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집에 있다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밖에서조차 그렇게 대담한 행동을 일으키는데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집안에서는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
     안에 들어온 건 처음이지만, 시스터의 집은 2층집으로, 꽤나 커다란 집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창문 근처까지 이동해 살짝 커튼을 열어보자 꽤 높이가 있어서, 여기가 2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으엑!?”

     어떻게 탈출할까 생각하며 거울 앞까지 이동했을 때, 니나는 그만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뭐, 뭐야 이 옷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시스터가…… 입힌 건가……’

     길이나 노출도는 아침에 입혀졌던 셔츠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제대로 된 원피스였지만, 문제는 그 디자인. 딱히 이상하지도, 불쾌하지도 않지만 그저 니나 개인의 감성에 맞지 않는 엄청 동화 같은 디자인이었다.
     하얀 레이스에 커다란 파란색 리본이 곁들여진 그것은, 마치 동화책의 히로인이 입을만한 의상이었다. 니나가 평소에 있는 옷에 비해 너무나도 귀여운 옷이었다.
     불만인 점은 그것뿐으로, 사이즈나 착용감은 마치 자신이 산 옷처럼 느껴질 정도로 잘 맞아서 자신이 이런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기 전까지 아무런 위화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옷을 입고 나가는 건…… 싫은데’

     탈출하려는 의지가 조금씩 옅어진다.
     니나가 이 집에서 탈출하고 싶은 이유는 단 하나. 부끄러운 꼴을 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확실히 이 옷은 알몸으로 돌아가게 하거나, 셔츠 한 장으로 데이트에 나가게 하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부끄럽다는 감정이 없어질 정도의 것은 아니다.
     가능한 한 이런 모습으로 밖에 나가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멋대로 옷을 빼입는 것도 조금 그렇다.
     야한 일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하거나 했지만, 어디까지나 시스터도 개 목걸이의 피해자다. 니나가 개 목걸이를 차지만 않았으면 지금도 상냥한 시스터로 있어줬을 것이다.
     그래서 이 이상 시스터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심적으로 꺼려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저항으로 치욕을 당하는 건…….

     “어떡할까……”

     생각이 수습되지 않아 머리를 긁적인다.
     일단 움직이고 생각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자, 문 너머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조금씩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계단을 오르고 있어서 그런 걸까.

     ‘어쩔 수…… 없나. 야한 일을 당하는 건…… 이번에는 그냥 받아들이자’

     과격한 일을 당할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보일 걱정은 없다. 니나에게 있어서 가장 부끄러운 일은 본 적도 없는 타인에게 보여지는 일이다. 보는 사람이 시스터뿐이라면 어떻게든 참을 수 있다. 모든 것에 싫다고만 할 수는 없다. 어쨌든 원인은 자신에게 있으니까.
     한 번 깊게 심호흡을 하고 각오를 다진다.

     문이 열리고, 예상대로 시스터가 들어왔다.
     실크로 만든 로브 한 겹에 슬리퍼라는 밖에서는 보여주지 않는 얇은 옷차림. 데이트 때 입었던 원피스와는 다른 의미로 시선을 빼앗긴다.
     목욕을 마치고 온 건지 하얀 피부에는 물기가 남아있고, 볼도 살짝 상기되어 있다. 머리카락도 아직 다 마르지 않아 예쁜 흑발이 더욱 윤기 있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니나 양. 잘 잤나요”
     “아, 안녕하세요”

     로브를 입고 있는 시스터에게 묘한 색기를 느껴버리고 말아 조금 눈을 돌리며 대답했다.

     “저, 얼마나 자고 있었나요?”
     “으~음…… 3시간 정도일걸요?”

     시스터는 창문 앞까지 이동한 후, 커튼을 조금 젖혔다. 어두운 실내에 붉은 빛이 들어왔다.

     “큰일이었어요. 기절한 니나 양을 여기까지 옮기는 것은. 니나 양 가벼우니까 업고서 돌아올까도 했습니다만, 그런 옷을 입고 있었으니 속옷이 다 보이더라고요”
     “윽!?”

     시스터의 말에 니나는 동요한다.

     “시, 시스터. 혹시 그 옷을 입힌 채로 저를 여기까지 옮겼어요!?”
     “후후, 걱정 마세요. 평범하게 그 자리에서 데이트 전에 입고 왔던 옷으로 갈아입힌 다음 업고 돌아왔어요. 의식이 없는 니나 양을 괴롭혀봤자 반응이 없어서 허무할 뿐이니까요”

     그 말을 듣고 니나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하지만 그 한 순간의 틈을 찔러 시스터는 입을 연다.

     “아아, 하지만 니나 양 실금까지 했었으니까 하반신이 완전히 젖어서 어쩔 수 없이 속옷은 벗겼지만요. 갈아입힐 속옷은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었어요♡”
     “으엣!?”

     새빨개진 니나를 보고 시스터는 유쾌하게 웃는다.

     “후후, 뭐, 오늘 니나 양이 입고 온 옷이라면 아마 보여지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 ‘아마’♡”

     아마, 라는 부분을 일부러 강조하듯이 말해져 니나의 심장이 뛴다.
     이미 지난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의식해버리고 만다.
     시스터는 허둥대는 니나를 보고 즐기고 있는 건지 굉장히 즐거워 보였다.

     ‘이대로 기세를 타게 놔두면 안 돼’

     이대로라면 또 시스터가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머릿속에 떠오른 화제를 그대로 꺼낸다.

     “저기……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뭔가요?”
     흘깃, 지금 자신이 입은 옷을 본다.
     그 동작으로 눈치 챘는지 시스터는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아, 그거, 1주일 전에 만든 거예요. 후후, 눈대중으로 만든 건데 사이즈가 잘 맞아서 다행이에요”
     “누, 눈대중이라니……. 아니, 1주일 만에 이런 걸 만들었다고요?”
     “취미거든요. 오늘 데이트에서 입었던 옷도 제가 만든 거예요”
     “그래요!?”

     단순히 화제를 바꾸기 위해 꺼낸 얘기였는데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 옷도 그렇지만, 시스터가 입었던 옷에도 여기저기에 세세한 자수가 있었지…… 정말로 손재주가 좋구나…… 마법만이 아니라 재봉까지…… 굉장하네’

     “……”

     무심코 조용히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관찰해버렸지만, 도중에 정신을 차린다.

     ‘그게 아니라, 나한테는 이런 거 어울리지 않으니까 내 옷을 돌려달라고 제대로 말해야 해’

     마음을 다잡고 입을 열려고 했지만, 니나를 빤히 관찰하며 계속해서 끄덕이고 있는 시스터를 보고 다른 말을 입에 담는다.

     “왜, 왜 그래요?”
     “아뇨…… 제가 만든 거지만 참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서”

     니나의 몸을 찬찬히 뜯어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 시스터.

     “어어, 아아. 확실히 옷 자체는 굉장히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기뻐요! 니나 양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혀주고 싶다고 생각하며 디자인 한 건데 마음에 들어 하시다니!”
     “엑!?”

     자신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대답에 니나는 곤혹했다.

     “그…… 옷은 굉장히 멋진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저한테는 조금 어울리지 않다고 해야 되나, 제가 입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네?”

     이번에는 시스터가 놀랐다는 듯이 소리를 냈다.

     “리아스라면 이런 것도 어울릴 거라 생각하지만, 이렇게 귀여운 옷, 저 같은 거한테는…… 아무래도”
     “아뇨, 그렇지 않아요!”

     이상할 정도로 힘이 들어간 대답으로 부정당해 그만 위축된다.
     시스터의 눈동자에는 개 목걸이를 차기 전에도, 찬 후에도 본적 없는 정열 같은 것이 들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알겠나요? 니나 양은 좀 더 자신의 매력에 눈치를 채야 해요. 아무리 소재가 좋아도 본인이 그것을 모른다면 완벽히 살릴 수 없다고요!”
     “그, 그치만 역시 저한테는 수수한 색…… 히익”

     말하는 도중에 시스터의 눈빛에 위축되어 니나는 한심한 비명을 지른다.

     ‘시, 시스터가 이런 사람이었나……?’

     완전히 움츠러든 니나를 보고 시스터는 “하아”하고 커다란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그 후에 무슨 생각이 떠오른 듯 “앗”하고 짧은소리를 지르고, 니나를 쳐다보며 보여주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예정 변경이에요 니나 양. 각오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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